단편

[하설영]

palaisblanc 2025. 1. 30. 19:27


하늘에서 분분히 떨어지는 그것은 어느덧 새하얗게 새어 흩어져버린 날숨을 닮았다.

딛고 선 설경이 펼쳐져 한없는 절경이다. 수묵으로 힘차게 짓쳐그린 듯한 풍경이 아스라했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제법 맹렬하였음에도 그런 것은 애시당초 방해 따위는 되지 못하였기에 걸음을 재촉한다. 무결한 순백에 한 명 분의 족적이 이어졌다. 걷고 또 걸어나간다. 잿빛 하늘에 드리워진 눈발은 걷힐 심산이 없고 계속이 흐린 설운이 낀 하늘만이 펼쳐져 나감에도 걸어나간다는 그 자체에서만으로 갈망하는 무언가를 그리듯, 소망하듯 묵묵히, 아련히, 그렇게…


비로소 그는 순백 속 유채색을 찾았다.


아아, 자신을 보자마자 환히 달려오는 그 자태야말로 진정, 진정──

두 인영이 겹쳐졌다. 부둥켜 껴안으며 뒤로 넘어가버린 그들을 설원이 품었다. 입술이 겹쳐지고 숨결이 겹쳐졌다. 추위에 붉어진 그녀의 뺨이 그 고운 색을 더했다. 서로를 탐하여 숨조각 하나하나를 천천히 얽어나간다. 뛰어온 채로 살짝이나마 가빴던 숨도 전부 이대로 그에게 넘기려는 듯한 후에야 떨어진 그녀가 속삭였다. 당신이 눈 속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 나도 그 속에 있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내가 어떻던가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만… 왜인지 설풍에 휘말린 당신이, 덧없어 보였습니다. 뭐야, 그게… 자신을 향한 채 모로 누운 정인의 자태에 일견 눈이 부셔 그는 말없이 눈을 깜박였다.

그리 그대로 아주 사라질까, 순간 두려워졌습니다.

하설영은 그대로 뒷말을 삼켰다.

그의 빛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있잖아요, 설영 씨.

나지막한 울림이 사랑스러웠다.

난, 언제고 당신을 볼 때마다… 그 어떤 상념도 머릿속에서…

설백과 유채색을 동시에 품은 이였고, 지금은 또 탐스라히 달아오른 홍옥의 빛이었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 닳아나가고 얼어붙으며 침잠해가던 그의 세상에 별안간 스며든 유일한 빛… 생각하고 정의하고 재단할 것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지금 이곳에 그녀가 있다.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그녀의 뺨에 떨어진 눈송이가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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